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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잡 것들/일상다반사

관리자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by 노랑재규어 2010. 3. 17.
내가 경영 서적 그 중에서도 관리/리더십 등에 관한 책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너무나도 힘들었던 대학원 생활이었다.

대학원은 나름 지성인이 모여드는 곳으로 알지만,
full time 대학원 생활을 해보면
참으로 학을 뗄 정도로 지저분한 곳이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우물안 개구리처럼 모여서 지지고 볶는 모습은
마치 축소된 정치판 같다.

그 안에서 소수의 후배들을 다루는 것만도 너무나도 힘들고 벅찬 경험이었다.
그래도 나름 리더십은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각양각색의 잘난 사람들을 데리고
치열한 암투속에서
말도 안되는 일들을 해내려다보니
욕이나 안먹으면 다행일 지경이었다.

그래서 자문도 구해보고 고민도 해보고 책도 읽어보고 별의별짓을 다해보았다.
그 덕분에 그래도 지금은 욕 덜먹으며 관리업무를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흔히들 관리는 사회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처럼 책을 보고 공부했노라고 하면
한쪽 눈썹을 약간 치켜 올려 보곤 한다.

그들의 시선은 그건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지
책을 보고 배우는 것은 아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듯 하다.

내 생각은 다르다.
경험에 의해 익혀지는 부분이 매우 많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관리/리더십은 매우 섬세하고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그 부분이 채워져야 비로소 가장 중요한 20%가 채워진다고 생각한다.

내 역할이 역할이다 보니 많은 레벨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내가 본 중견 기업이상에서 중역을 맡는 사람들이 갖는 몇가지 공통점 중에 하나가
관리/경영/리더십에 대해 공부하고 집중적인 훈련은 받았는가 아닌가이다.

그들은 매우 엄격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고,
스스로 많은 공부를 했었다.
즉, 경험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내 서재의 많은 책들도 대부분 관리/경영/리더십/심리/인간관계/미래학에 관한 책들이다.
요즘 가까운 사람에게 간혹 책을 좀 보라고 권하면
교양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때가 간혹 있다.
뭐 그런 걸 책을 보냐고 하는 핀잔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럼 화제를 돌린다.
더 이야기 해봐야 내 입만 아프기 때문이다.

솔직히 철학책은 머리 아파서 못읽고
소설은 시간이 없어서 잘 읽지 못하지만
나도 간혹 에세이나 기타 책들을 읽고는 한다.

나의 부친도 평생을 경영을 해오셨고, 지금도 일흔에 현장에서 뛰신다.
당신께서 언젠가 내게 하셨던 말이 있다.
"청춘과 장년을 나 아닌 타인을 위한 관점에서만 살아 왔다.
공부를 해도 타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공부했고
인생을 고민해도 타인을 향해 고민했다.
어린 시절 다하지 못했던 나에 자신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이젠 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아는 당신은 철학을 사랑했고
특히나 칸트를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분이시다.
어쩌다가 칸드 이야기가 나오면 온종일도 칸트 철학을 이야기하실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러던 분이 연세가 60세 중반이 되고서야 다시 칸트 철학 서적을 손에 쥐셨다.

나에 대한 성찰. 필요하다.
다만, 타인을 위한 관점에서 나를 성찰해야 경영자고 관리자이다.
나에 대한 성찰이 나를 향한다면 절에 들어가야 한다.

현장에서 관리자가 되고 중역이 되고
적어도 후배들을 끌고 가야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감각과 경험에만 의존하지 말고
쓸데 없는 소설이나 마음 무거워지는 철학책에 빠지지 말고(읽지말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경영/리더십/심리/인간관계에 대한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난 솔직히 철학자나 예술가 이름과 연대와 그들의 사상엔 별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논리가 맞는지 안 맞는지 논쟁에는 더더욱이 관심이 없다.
내 식구들 어떻게 하면 훌륭한 사회인이 되게 할 수 있을까에 훠얼씬 더 많은 관심이 있고,
어떻게 우리 조직을 이끌고 변화시켜야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라면 날을 세워도 이야기할 수 있다.

단, 술자리에서 수다라면 음담패설 충분히 해줄 수 있다.
그런 나를 인생내지 자기 성찰에 대해 고민없다고 매도는 말아주길...

아 오늘도 횡설수설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탓이다.
맥주나 한잔하고 잠이나 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