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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일지

날지 않는 새가 새인가? - 참새도 우습게 보지마라.

by 노랑재규어 2009. 10. 11.
중학교때 아니면 고등학교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남산에 조그만 동물원이 있었던 것 같다.

쇠창살에 전시된 독수리와 매를 구경하면서
과연 저 새가 독수리이고 매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독수리이고 매이려면 날아다니며 사냥을 해야 할 일 아닌가?
날지도 못하고 사냥도 하지 못하는 저 야생을 잃은 새가
과연 독수리이고 매란 말인가?
아니 새이기는 한가?

그 이후로 동물원에 가서 동물 구경하는 걸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보는 그 동물들은 각각의 이름의 탈을 쓴 인형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사업을 하다가 보면,
사업가라는 삶을 무모하게도 선택한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
나이 지긋하신 40~50대 어르신들을 만나곤 한다.

한때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공치사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분들 적어도 절반은 진심이다.

그들이 받는 월급의 반의 반도 안될 연봉으로 살고 있고,
나이가 많고 적음, 직급이 높고 낮음에 관계 없이 항상 고개를 숙이며 살아야 하는 을의 삶을 살고 있으며,
모두가 취미로 즐기고 있는 골프, 낚시, 바둑, 당구, 술을 상대방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일로써 밖에는 할 수 없고
비즈니스 영역에 대한 정보도 취약하고, 아이템도 고갈되어 매일 매일 내일을 고민하여야 하는
이 사업가가 부럽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맥, 능력, 사회적 인지도의 반만 가져도 나는 대박이 날 것만 같은데
그들은 직접 사업가가 되지 못하고 그저 나같은 모자라고 무모한 사람을 한없이 부러운 듯한 눈빛으로
간혹은 촉촉한 눈빛이 되어 바라보기만 한다.

왜?
굶주림에 시달려도 날아다니고 있는 새가 부러운 것이다.
이름표에 독수리이고 매라고 적혀 있지만
매일 매일 배고픔 없이 살고 있지만
사냥이라곤 해 본 적없고 야생을 잃어버린
그저 전시되어 있는
날 수 없는 새인 것이다.

그들을 야생에 풀어주는 날
그들은 죽는다.
그래서 끝까지 우리속에 살아 남으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보기엔 버러지라도 주어먹고 사는 참새가 부러울 만 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새장을 나오려거든
그 순간부터 야생이라는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다짐하고 다짐하고 나와라.
다신 새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돌아갈 수도 없음을 다짐하고 다짐하고 다짐하라.
그리고 새장속에서 독수리였고, 매였기에 고기라도 뜯어 먹었지,
야생에 나오는 순간부터 참새랑 같이 앉아서 버러지라도 주어 먹으리라고 다짐하고 다짐하고 다짐하라.

새장속 독수리와 매가 야생에 나와서도 독수리고 매라고 깃털을 털고 앉아 있으면
지나가던 애도 웃는다.
고개를 들어 당신의 머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새들을 봐라.
그 까치와 까마귀에게 살을 뜯겨 먹힐 날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