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직장에서 근무할 때였다.
당시로서는 나름 각광받는 분야인 핸드폰 어플리케이션 개발과 관련 서비스가 주 업종인 벤처회사였다.
통신 관련 분야는 내 전문분야가 아니었기에, 기술적으로 깊이 있는 이해를 갖기 어려웠던 나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연구소에서 잘리고 전략기획실에 배치되어 근무를 했다. 사업을 꿈꾸던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직책이었다.
처음에는 이 회사가 무엇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연구소와 영업부, 대표이사가 설명하는 것들을 잘 정리하고 취합하여 그것을 가지고 외부에 나가서 잘 발표하고 설명해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투자자들은 날카로웠다. 우리의 수익 모델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려는 노력 못지않게 그것이 과연 맞는 모델인지도 꼼꼼히 따졌다.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고, 늘 그 자리에서 대표이사는 훌륭한 언변으로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곤 했다. 하지만, 투자 유치는 매번 마지막에 결렬되었다. 투자를 철회하거나 투자자의 투자 비율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서서히 나는 이 회사가 말하는 화려한 미사여구 뒤에 숨어있는 실제의 수익구조와 기술적 한계, 시장환경의 한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내가 투자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중요한 진실을 말하지 않고 감추고 있었다. 이 시장환경에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것, 굳이 수익을 내겠다면, 뭐랄까 뒷골목의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이 사업은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 이자놀이 장사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나는 대표이사에게 내가 파악한 바를 이야기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정확히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투자자를 끌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원래부터 그런 사업방향을 표방했다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투자자도, 회사의 직원들도 모두 사실상 속고 있는 것이었다.
더 가관인 것은, 그런 현실은 임원들의 관심밖이었다는 것이다. 임원 3명은 서로 각자는 잘났고 상대방은 못났다고 싸움을 벌이며 급기야 대표이사를 교체하려고 직원들의 지분을 끌어모아 지분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해야 하는 직원들은 매일 저녁 대표이사를 해임하려는 임원들에게 불려 나가 술을 마시고 회유당했다. 심란해서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그래서 지분 싸움에서 이기기라도 했으면 창피하지라도 않지. 지분 싸움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지분을 늘리겠다고 돈을 더 넣어 개인 파산만 자초했을 뿐 아니라 실패한 쿠데타로 인해 임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들은 프로인 척하는 아마추어 같았다.
그때 나는 화장을 짙게 하고 어두운 조명아래에서 투자자를 꼬시는 창녀 같은 짓을 하는 벤처의 행태를 경멸하게 되었다. 그럴듯한 거짓으로 꾸미고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 일종의 사기라고 생각했다. 나야 월급 받으면서(몇 달을 밀려보긴 했지만) 사업의 실전 경험(이런 식으로 하면 망하는구나)을 했으니 딱히 손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이리저리 휘둘리느라 시간 낭비하고, 지분 싸움에 휘말려 생돈 날린 직원들은 사실 가장 큰 피해자이다.
내가 접촉한 투자자들 중에서 젊은 외국인이 있었는데, 제법 명석한 전문투자꾼이었다. 그의 활동을 관찰해 보면 마치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쉰들러가 투자를 받기 위해 군인들의 파티장에서 줄타기 영업을 하는 모습 같았다. 대표이사도 이 친구에게 호감을 가지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서로 꾼은 꾼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나는 전략기획 담당자로써 그 친구와 자주 미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그때쯤 아까 언급한 회사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회사의 직원으로서 해야하는 업무와 개인적인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었다. 나는 고심끝에 그에게 진실을 말하진 않았지만, 진실을 볼 수 있는 상황을 제공했다. 적극적으로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지만, 명석하다면 의문부호가 머리위로 떠올라야 할 기회를 주었다. 그는 합리적 의문을 가졌고 그것을 대표이사에게 질문했으며 결국 투자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 회사를 퇴사하고 시간이 흘렀을 때 그가 연락을 했던 적이 있다. 투자 전문가로써 한국 대기업에 취업하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그는 내가 진실을 보게 해준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그 회사에서 나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고마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나는 다시 한번 씁쓸했다. 왠지 회사의 직원으로써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그 상황이 되어도 나는 많은 고민 끝에 그가 진실을 볼 수 있게 했을 것이다.
나는 바보인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업을 한다면 미래가치를 제시해서 투자를 유치해서 회사를 키우고 지분을 매각하면서 큰 돈을 유치하거나 벌 수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나는 그럴(당장 내일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투자금을 뛰어넘는 미래가치를 창출할까) 능력이 없고, 그런 것처럼 보일 능력은 더더욱 없다. 떡칠하는 화장은 애초에 상상도 못 하고, 기초화장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민낯 그대로 회사를 경영한다.
요즘 자회사 설립을 고민해보고 있다.
투자유치도 고려하는 운영 방식을 검토 중이다.
며칠을 생각해 봐도 나는 화장술이 자신 없다. 아니 그게 싫다. 나는 상투 투자자가 독박을 쓰는, 뻔한 거짓말들 속에서 내가 마지막이지만 않으면 되는 식의 난장판 속에 내 회사를 창녀로 밀어 넣을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벤처 투자 시장은 여전히 도박판에서 잭팟을 노리는 투자자들의 집합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능력이 된다면, 기회가 된다면, 굳이 내 생에서가 아니더라도, 우리 회사가 새로운 벤처 모델의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