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근로복지기금 제도 또는 공동근로복지기금 제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각종 정부 관련 과제의 평가에서 가점을 받을 수 있다길래 무슨 제도인가 찾아 공부를 해봤다.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의 기본적인 개념은 이러한 듯하다.
1. 회사가 이익의 일정 부분(약 5% 정도를 권고)을 기금 형식으로 출자하여 법인을 만들고,
2. 그 법인은 각종 수익 사업(주로 금융상품)을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해당 회사의 직원에게 각종 복지 사업(목적사업이라고 칭함)을 하는 제도로써,
3. 이와 관련해서 발생하게 되는 각종 세금에 대해 혜택을 부여한다(출자금에 대해서 비용인정, 수혜자에 대해 증여세 비과세).
공동근로복지기금제도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을 단독으로 운영하자니 돈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여럿 뭉쳐서 하나의 법인을 만들어 운영하는 제도이다. 즉, 여러 회사가 하나의 근로복지기금을 운영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와 비슷하다.
솔직히 이거 내가 하고 싶었던 제도이다.
사업가는 늘 현실에 대한 방어적 입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국가에서 제도를 만들어서 권고하거나 지원하면 적극 도입하는 계기가 된다. 세전 이익의 5%라는 가이드라인도 나름 고민한 흔적으로 보인다. 또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보면, 나름 합리적인 고민의 흔적이 있다. 예를 들면, 회사가 경영상의 이유로 폐업을 하게 될 때, 이 복지기금 법인도 해산하면서, 밀린 임금이나 퇴직금이 있을 경우 여기에서 변제할 수 있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공동근로복지기금의 경우, 정부에서 100%를 매칭 해준다는 점이다. 즉, 2개 이상의 기업이 모여 2억 원의 기금을 마련하면 3년에 걸쳐 총 2억을 정부가 대준다. 제도의 취지가 좋으니 정부에서도 적극 홍보하는구나 싶었다. 이러한 제도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잘 홍보되지 않은 탓에 도입 건 수가 적어서 국가에서 적극 홍보한다는 기사도 보았고, 실제 갑자기 참여 희망 업체가 늘어서 예산이 부족했다는 최근 기사도 읽었다.
하지만 세부적인 사항을 검토하면서부터는 좋은 제도임에도 도입이 더딘 이유는 홍보 탓이 아니라 제도 탓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복지기금제도는 본래의 취지와는 다소 다르게 변형된 것들이 있다.
우선, 회사가 아니어도 외부에서 기부 형태로 기금을 넣을 수 있는데, 이 제도의 의도는 하청업체에게 대기업이 복지기금을 넣어주라는 의도이다. 제도의 설명 부분에도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고, 기금을 넣은 대기업에게는 가점을 주는 제도가 있다.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더더욱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우선, 기금(기본재산)의 50%까지 목적사업에 쓸 수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80%까지 쓸 수 있다.
법인의 주주에 해당하는 근로복지기금 협의회는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이 각각 2명 이상씩 선임하고, 법인의 이사에 해당하는 이사는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이 각각 3명 이상씩 선임하며, 감사는 각각 1명씩 선임한다.
그리고, 회사의 임원은 혜택의 대상자가 아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현장의 경험에 비추어, 중소기업의 경우, 일단 사용자 측(대표이사)에서는 저 기금을 내지 않을 것이고, 법인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기금이 3년 이상 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운영 방식은 이렇다.
수익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사용자 측에서 주로 관리하고 근로자 측인 감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목적 사업에 대한 사업계획과 그 집행은 근로자 측에서 주로 관리하고 사용자 측이 감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목적 사업에 쓸 예산을 결정하는 것은 사용자와 근로자 측이 합의하여 관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중소기업의 자금 운영 규모 특성상 도입 해부터 3~5년 정도는 목적사업을 수행하지 않고, 수익금을 기본재산으로 전환하는 것이 적합하다. 또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기본재산은 목적사업에 사용하지 않고, 수익금 만으로 목적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 나아가, 당해연도의 수익금으로 목적사업을 수행하기보다는 전년도의 수익금으로 올해 목적사업을 수행하면 목적사업을 정확하고 신뢰성 있게 운영할 수 있다.
내가 대표이사라서 하는 생각일런지는 모르지만, 임원도 수혜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제도는 공평 속의 공정을 추구하는 제도이므로, 임원이라고 대상자에서 제외하는 것은 임원을 위한 별도의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불공평하다.
허나 내가 살펴본 세부적인 운영규칙들에서는 이런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다.
우선, 대기업의 하청을 받지 않는 회사이거나, 대기업의 협조를 구할 수 없는 회사라면, 사내근로복지기금은 그림의 떡이다. 물론 중소기업이라도 만들 수는 있지만, 사내근로복지기금은 중소기업에게 별다른 혜택이 없다.
여러 회사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근로복지기금은 정부가 지원한다지만, 운영 상에서 어려움이 널려있다.
우선, 3개의 회사가 각각 3천만 원, 7천만 원, 1억 원을 출자하여 2억을 마련하고 정부로부터 3년 동안 총 2억을 보조받았다고 하자. 그래서 목적사업에 사용할 수 있는 수익금이 3천만 원이 생겼다고 하면, 이 금액은 어떤 비중으로 사용되는 것이 합리적일까? 이 제도의 세부지침에서는 얼마를 출자했든 관계없이 모든 회사의 근로자가 공평하게 혜택을 받는다. 즉, 어느 회사에 소속되었는지에 관계없이 복지기금에서의 혜택은 동등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인 및 자신의 학자금에 대해서 목적사업으로 지원할 수 있는데, 첫 번째 회사만 당해연도 대상자가 3명이고, 나머지 회사에는 없었다고 하자. 얼마를 출자했는지에 관계없이 첫 번째 회사가 목적사업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다른 회사의 사용자와 근로자들이 과연 동의할 수 있을까?
그럼 회사 간에 서로 투자한 금액에 맞는 비율로 목적사업을 쓰고, 나머지는 다시 기본재산으로 넣어서 비율을 조정하는 형식이 되어야 공정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는다면,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아 각 회사가 출자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제도상에서는 이렇게 규칙을 정할 수 없다.
또한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이 모든 의사결정에 동등하게 참여하게 되어 있다. 뜻은 좋으나, 현실은 매우 참혹할 수 있다. 여태 중소기업을 경영하면서, 근로자들은 장기적인 공동의 이익보다 단기적인 개인의 이익에 더 충실하다는 걸 깨달았다. 앞서 이상적인 운영 방식은 근로자 측의 반대로 무산될 가능성이 99%이다. 오히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목적사업의 비중을 높이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내가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데, 몇 년 뒤의 수혜가 내게 무슨 상관인가? 법에서 허용하는 최대 범위만큼 쓰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3~5년간의 수익금의 기본재산으로 유보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찬성을 얻기 어려울 것이고, 수익금 전액과 기본재산의 50%(중소기업은 80%)도 모두 목적사업에 쓰자고 근로자 측의 사업계획안을 낼 것이다. 노사 간의 의견 대립은 팽팽할 것이고, 어느 쪽으로든 사단이 날 것인데, 내가 대표이사라면 이상적인 제도고 뭐고 간에 다 때려치울 것이다. 그런데 일단 만들면 해산도 그냥 안된다. 원래의 회사가 폐업할 때까지 안된다. 이런 상황이 예상된다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아예 만들지 말자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내가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좋은 일하고 욕먹을 짓을 하는가?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된다.
사용자 측이라고 하는 회사의 임원(특히 대표이사)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악덕 기업주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그렇다 보니 만드는 제도들 마다 "사장은 어떻게든 해 먹으려고 하니까 그걸 못하게 해야 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제도를 꼼꼼히 검토하면서 든 생각은 이렇다.
"제도를 설계한 사람은 좋은 취지로 만들었으나, 제도를 구현한 사람들이 그 취지가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저 제도에서 제일 중요한 플레이어는 사용자이다.
사용자가 저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잘 운영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규칙에 담긴 내용은 "넌 돈만 내고 빠져" 그리고, "그 돈은 우리가 잘 쓸게"이다.
저 제도를 원래 취지를 살려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는 무엇일까?
내 의견은 이렇다.
1. 중소기업이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를 도입하는 경우에 대해서 정부가 적극 지원하라. 퍼주기식으로 지원하지 말고 해당 회사의 제도의 도입 목적 및 운영 방식이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살펴서 장기적으로 지원하라. 그러기 위해서 정부가 지원하는 기금의 경우 운영 현황을 매년 감사하는 것을 위무화하라.
2. 근로복지기금제도가 길게 운영되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기본재산을 목적사업에 사용해서는 안된다.
3. 재산을 늘리는 것은 사측이, 수익금을 사용하는 것은 노측이 주도하되, 서로 투명하게 운영하고 견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
4. 중소기업이 수익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이 기금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관리해주는 기관이나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연기금에서 같이 관리해주면 좋겠다.
5. 해산이 너무 어렵다. 특히 공동근로복지기금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합리성이 크다.
5. 중소기업에 대해서만이라도 제도 개선을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왠지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대기업에서 돈 빼서 중소기업 복지에 쓰려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세부사항을 이해한 후 포기하게 되어서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