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영위한 지 십수 년이 지났다.
사업이 잘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십 년이 조금 넘어서니 일단 지금은 예전처럼 월급 걱정을 심하게 하며 살지는 않는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예상될 만큼 시중에 자금이 많이 풀렸다는 점에서 우리가 사업을 잘했다기보다는 시중에 돈이 많아서 사업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또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고...
사업을 하겠다는 남편을 둔 아내라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마 그 걱정 때문에 밤잠을 설치다가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앞서 수년 전에 "사업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나의 경험과 나의 아내의 경험을 비추어 몇가지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 현시점에서 돌이켜 볼 때 꼭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간추려보라면 아마 다음 두 가지 정도일 것 같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선, 맞벌이가 유리하다.
가급적 서로 다른 회사에 있는 것이 좋고, 아내는 안정된 직장인인 것이 좋다.
사업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불안의 연속이다. 사업이라는 것 자체가 통제되고 싶지 않은 야생마 같은 존재라서 늘 낙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초기 10년 정도의 사업은 정말 예측불허 그 자체이다. 당연히 그 사이에 좋은 시절과 안 좋은 시절의 굴곡이 자주 있을 것이고, 안 좋은 시절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깊을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다르게 말하자면 긍정적인 경우는 월급이 잘 안 들어온다는 의미가 될 것이고, 부정적인 경우는 남편이 신용불량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업이 잘 될 자신이 없으면 사업을 하지 말아야지."
당연한 말이다. 누구도 사업이 잘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업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업을 했을 때 10년 동안 생존할 가능성은 채 3%도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대박 날 확률은 로또 맞을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당신의 남편도 월급을 못 가져다주거나 신용불량자가 될 가능성이 97%이며 그럴 때도 당신의 가정은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아내가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그를 비난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그런 위험이 포함된 것이다. 대신 그런 위기의 시간을 지나고 회사가 자리를 잡게 되면 그간 밀린 월급을 일시에 받으면서 목돈이 생기는 매우 행복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생각보다 매우 짭짤하다.
두 번째로, 전에도 언급을 하긴 했지만 에둘러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번엔 대놓고 한마디 하련다.
자신의 집이든 전세든 월세 보증금이든 무조건 아내의 이름으로 할 것. 그리고 절대 사업을 위해 팔거나 담보 잡히지 말 것. 이건 남편이 사업을 하겠다는 것에 아내가 동의하는 필수 전제조건이다. 아내에게 "이번 한 번만...", "니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니?" 이 따위 말을 하지 마라. 어쩔 수 없이 담보를 잡히려면 시부모 재산을 담보 잡혀라. 그럴 여력이 없으면 사업하지 마라. 이건 내 기준에서는 절대 조건이다.
왜냐면, 사업이 잘 안 될 때 아무리 냉철한 판단을 하려고 노력해도 "이번 한 번만 넘기면 될 것 같은" 유혹에 빠진다. 도박에서 "이번 한판만"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사업을 하는 이유 중 중요한 하나는 내 가정을 행복하게 해 주려는 것 아닌가? 의식주 중 가장 중요한 "주"를 가족에게서 빼앗는다는 것은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사업을 한다는 이야기이므로 사업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건 남편과 아내가 반드시 해야 할 약속이다.
나는 그렇게 했다.
딱 한번 담보 잡으면 안 되겠냐고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국가가 발주한 용역에 대한 선급금 보증이 필요했었다. 소위 떼일 리가 없는 돈이었다. 아내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약속했잖아."
아주 잠깐 섭섭했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였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부모님에게 부탁했다. 충분히 설명을 드렸고 아버지께서 사업을 해보셨기 때문에 허락해주셨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님 살고 계신 조그만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가 현명했다. 그 상황 자체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이번에 담보를 제공해주면 다음에도 조금 더 어려운 상황에서 담보를 제공해달라고 할 것이 너무 분명했다. 힘겹게 하지만 단호하게 안된다고 해준 아내에게 지금도 감사한다.
남편이 성격이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거나, 애인이 생긴 것 같다거나, 삶이 궁핍해지는 것이 답답하다거나, 일에 빠져서 가정에 소홀한 것 같다거나, 싸움이 잦아진다거나... 많은 일들이 "사업가의 아내"로써 사는 삶 속으로 비집고 들어 올 것이다. 그런데 그건 사업가가 아니어도 겪는 일이긴 하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위에 언급한 저 두 가지 중 첫번째는 권장사항이고 두번째는 필수사항이다.
물론 저 두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는 사업가를 여럿 보았다. 그래도 사업은 할 수 있다. 언젠가 위험이 사업가와 사업가의 아내에게 다가올 때, 그 위험이 주는 고통의 강도가 다를 뿐이다. 매우 말이다.
아직도 사업을 하고 있고, 아내와의 사이가 신혼처럼 돈독한 것도 아니지만, 나는 사업가의 아내로 살아온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내 아내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 사업에 관한 한 나에게 최고의 조언가이기도 하다. 아마 굳이 말하지 않은 세 번째 필수사항은 내 아내처럼 남편의 말을 잘 들어주라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