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 : 난 MBC의 근래 논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자극적이면서 객관적을 갖추지 못한 감정적인 논조는 문제만 제기할 뿐 영원히 답을 낼 수 없는, 비판을 위한 비판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시 역사의 입장이 바뀌게 되면 정반대의 비판을 받게 될 것이 뻔한데, 이 놈의 쳇바퀴 돌 듯, 비판을 양산하는 냉소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 책임을 역사 속에서 지울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 스페셜의 안철수와 박경철 편은 인상 깊은 수다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던진 시대비판의 의미를 되씹어 볼 만한 여유를 주지 못한 편집의 아쉬움이 크지만, 두 논객이 던진 그 주제만큼은 심히 이 시대의 중심에 서있는 중심세대이라면 가져야 할 시대의식을 자극해주었다.
그 중 박경철씨의 말들은 내게 있어 매우 인상적이며, 내 주관에 따르면, 이 시대의 중도의 표준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부의 성장과 분배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성장 방식은 정답이라 칭할 수는 없지만 개중 나은 선택이었다.
문제는 분배다.
최근 보았던 "정의"라는 강연에서 자유지상주의의 주장과 대비하여 생각해 볼 문제이다.
어디서 들은 것인지, 스스로 생각한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서양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보편화된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 혁명에서 배운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갖지 못한 것과 그로 인해 받게 되는 불이익은 좌절을 낳고,
좌절이 축적되어 표출되기 시작하면 분노가 된다.
이 분노가 사회에 보편화되면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혁명은 가진 자의 파멸을 낳게 되기 때문에,
가진 자는 적어도 그렇지 못한 자들이 분노하지 않게 해야 그들이 가진 그 무엇을 보호하고 유지할 수 있다.
그런 뼈아픈 역사의 교훈에 대한 반성이 없는 우리는
곧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셈이다.
역사 속에서 아주 교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군사정권의 교체는 그 하나의 교훈이다.
너무 많이 가진 상태에서 더 가지려 했기 때문에
대중은 분노했고, 혁명이 일어났다.
물론, 가진 자들이 영리해서,
조금만 풀어주고도 여전히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고
죽음이나 피를 보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그때는 권력이 주된 분노였다면,
이젠 기회와 부가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층까지는 몰라도 중산층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진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기회와 부의 편중에 따른 양극화는 사회의 분노를 더 크게 한다.
굳이 인간적인 도덕성을 기대지 않고
아까 말한 자신의 부와 기득권을 오랫동안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라도
기회의 평등과 사회 공익적 부의 분배에 대해서는
자기 반성이 시급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부의 세습 뿐 아니라, 기회마저도 세습된다면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다는 좌절이 팽배해지고 분노가 쌓여간다면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좌파던 우파던 관계없이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상태라면
에잇, 더러운 이 세상!!!
이라는 행동이 표출될 것이다.
사회를 끌고 가는 주축이 된 386(요즘은 486이라고 하던가?)세대들은 자신을 돌아보라.
박경철씨에게 김제동씨가 왜?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셨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가 했던 답은
기득권자가 되어보니 더 많은 부조리를 보게 되었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자는 기득권자라는 생각을 했다였다(정확히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듣기엔 그랬다).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깨어있는 기득권자인데, 못 가졌을 땐 몰랐는데, 가져보니 달콤하고 따뜻하고 그래서 더 갖고 싶고 남주기는 죽어도 싫던가?
귀족 노조. 비판 받아 마땅함을 깨달아야 한다.
사업가. 한국 사업 구조의 부조리를 되물림시키지 말아야 한다.
정치가. 말할 가치도 못느낀다. 지금 너희들은 더 나쁜 놈들이다.
나는 성공할꺼다.
성공해야겠다. 그래서 나도 힘을 가진 기득권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업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였던 것을 실현해야겠다.
적어도 그것이 시대 비판 정신을 가지고 살았던 우리 세대가 가진 존재의 이유를 실천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래야 우리 뒤를 이어 올 세대에게 개새끼라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세대가 정신차리고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혁명이 아니라, 기득권자가 되어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역사속에서 그런 기회는 지금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 스페셜의 안철수와 박경철 편은 인상 깊은 수다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던진 시대비판의 의미를 되씹어 볼 만한 여유를 주지 못한 편집의 아쉬움이 크지만, 두 논객이 던진 그 주제만큼은 심히 이 시대의 중심에 서있는 중심세대이라면 가져야 할 시대의식을 자극해주었다.
그 중 박경철씨의 말들은 내게 있어 매우 인상적이며, 내 주관에 따르면, 이 시대의 중도의 표준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부의 성장과 분배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성장 방식은 정답이라 칭할 수는 없지만 개중 나은 선택이었다.
문제는 분배다.
최근 보았던 "정의"라는 강연에서 자유지상주의의 주장과 대비하여 생각해 볼 문제이다.
어디서 들은 것인지, 스스로 생각한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서양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보편화된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 혁명에서 배운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갖지 못한 것과 그로 인해 받게 되는 불이익은 좌절을 낳고,
좌절이 축적되어 표출되기 시작하면 분노가 된다.
이 분노가 사회에 보편화되면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혁명은 가진 자의 파멸을 낳게 되기 때문에,
가진 자는 적어도 그렇지 못한 자들이 분노하지 않게 해야 그들이 가진 그 무엇을 보호하고 유지할 수 있다.
그런 뼈아픈 역사의 교훈에 대한 반성이 없는 우리는
곧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셈이다.
역사 속에서 아주 교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군사정권의 교체는 그 하나의 교훈이다.
너무 많이 가진 상태에서 더 가지려 했기 때문에
대중은 분노했고, 혁명이 일어났다.
물론, 가진 자들이 영리해서,
조금만 풀어주고도 여전히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고
죽음이나 피를 보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그때는 권력이 주된 분노였다면,
이젠 기회와 부가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층까지는 몰라도 중산층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진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기회와 부의 편중에 따른 양극화는 사회의 분노를 더 크게 한다.
굳이 인간적인 도덕성을 기대지 않고
아까 말한 자신의 부와 기득권을 오랫동안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라도
기회의 평등과 사회 공익적 부의 분배에 대해서는
자기 반성이 시급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부의 세습 뿐 아니라, 기회마저도 세습된다면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다는 좌절이 팽배해지고 분노가 쌓여간다면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좌파던 우파던 관계없이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상태라면
에잇, 더러운 이 세상!!!
이라는 행동이 표출될 것이다.
사회를 끌고 가는 주축이 된 386(요즘은 486이라고 하던가?)세대들은 자신을 돌아보라.
박경철씨에게 김제동씨가 왜?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셨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가 했던 답은
기득권자가 되어보니 더 많은 부조리를 보게 되었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자는 기득권자라는 생각을 했다였다(정확히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듣기엔 그랬다).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깨어있는 기득권자인데, 못 가졌을 땐 몰랐는데, 가져보니 달콤하고 따뜻하고 그래서 더 갖고 싶고 남주기는 죽어도 싫던가?
귀족 노조. 비판 받아 마땅함을 깨달아야 한다.
사업가. 한국 사업 구조의 부조리를 되물림시키지 말아야 한다.
정치가. 말할 가치도 못느낀다. 지금 너희들은 더 나쁜 놈들이다.
나는 성공할꺼다.
성공해야겠다. 그래서 나도 힘을 가진 기득권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업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였던 것을 실현해야겠다.
적어도 그것이 시대 비판 정신을 가지고 살았던 우리 세대가 가진 존재의 이유를 실천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래야 우리 뒤를 이어 올 세대에게 개새끼라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세대가 정신차리고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혁명이 아니라, 기득권자가 되어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역사속에서 그런 기회는 지금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