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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일지

어떤 회사를 만들 것인가? - 나의 이야기 1

by 노랑재규어 2023. 7. 26.

 

경영(management)은 원래 제멋대로인 성향의 것들을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회사에게 있어서 돈의 흐름(cash flow)은 미처 날뛰는 괴물이다.

수입은 거의 항상 들쑥 날쑥인데, 대부분의 지출은 꾸준하다.

경영을 통해 이러한 균형이 맞지 않는 돈의 흐름을 통제하여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

 

사업을 시작해보니, 수입이 필요했다.

우리가 무슨 그럴싸하게 쌈박한 제품/서비스를 기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투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제품/서비스를 갖지 못한 기업이 수입을 얻는 방법은 상품을 판매하거나, 용역을 하는 것.

그 어느 것인들 쉬울까?

우선 상품.

상품은 섭외도 어렵고, 수익도 낮다.

상품이 어떻게 판매되는지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A라는 회사가 특정 산업군(business area)에서 쓸 수 있는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이런 경우 A회사는 대체로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이다. 이런 회사들이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왜? 판매/유통은 또 다른 전문 영역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판매를 담당하게 될 회사를 찾는다. 이걸 대체로 대리점 또는 총판이라고 한다. 도매업이 주 비즈니스인 회사이다. 대리점은 직접 상품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일정 수의 딜러 즉, 소매점을 두고, 이들을 관리한다. 대리점은 특정 산업군(specific business area)이나 고객(specific customer)에 대해 독점권 또는 우선권을 부여받고 그 대가로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보장한다. A라는 회사가 제품을 100원에 대리점에 판매하고, 대리점은 자신의 비용과 마진을 붙여서 150원으로 가격을 책정한다. 딜러는 또 자신의 비용 및 마진을 붙여서 200원에 판매하는 식이다. A회사 또는 대리점은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딜러끼리의 경쟁을 하거나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한다. 또한 경쟁사의 제품보다 유리한 입지를 가질 수 있도록 제품의 품질도 관리하고, 각 단계별로 마진을 양보함으로써 가격 경쟁력도 확보하게 된다. 

대리점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금력과 영업력이 필요하다. 약속된 매출을 발생시키지 못하면 대리점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딜러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여야 하며, 홍보, 기술지원, AS, 현지화, 반품관리 등도 책임져야 한다. A사에 지급할 선급금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즉, A사에서 신뢰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치를 보유해야 한다. 그것은 자금력, 영업력, 기술력, 업력 등에서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가능하다.

딜러는 일종의 개인 영업자라고 보아도 된다. 자신의 영업력을 기반으로 제품을 판매한다. 영업의 능력과 협상의 능력 등등 그야말로 전문 영업맨의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시장은 매우 난장판이다. 솔직히 양반처럼 살아온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말그대로, 찐 피냄새가 진동하는 red ocean이다. 아주 특출난 영업맨이 아니고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벌 수 없다. 특히 딜러(소매)들은 열심히 하면 한두 명 정도 잘 먹고 살 수 있는 수익을 남길 수 있다. 그 이상의 성장은 또다시 어렵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는 자동차 딜러, 보험 딜러, 커피숍 가맹점 등이다. 그래서 또 다른 관계 제품을 함께 딜링하거나 커스터마이징(고객의 요구에 맞게 상품을 개조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비슷하다) 사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가끔, 좋은 제품을 독점 계약 또는 독점 인정 조건으로 판매하는 업체가 있는데, 이런 업체는 돈 잘 번다. 나는 1인 총판도 여럿 봤다. 정말 놀면서 일한다. 그런 제품을 찾아서 독점권을 갖는 것이 이런 종류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분야의 제품인데, 전혀 관계없는 무역회사 또는 무역업자가 지역(대체로 국가단위) 독점계약을 맺어버려서 판매가 아예 발생하지 않는 제품도 있다. 무슨 의미이냐 하면, 좀 (장사)될 거 같다 싶은 제품이 눈에 띄었다면, 웬만해서는 누군가 이미 독점 계약을 해놓았다고 보면 된다.

 

먹고 살려고 한 일 년 이 일을 해본 적이 있다.

정말 탈탈 털렸다. 이 바닥이 얼마나 치열하고 비열한지 정말 잘 배웠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난 그런 영업은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트라우마가 생겨서 지금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처는 크게 받았지만, 그래도 그땐 정신력이 받쳐주던 때라 재빠르게 손절했던 기억이 있다.

 

용역은 일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B라는 회사가 최신 컴퓨터를 하나 개발하려 한다고 하자. 이걸 설계하고 만들고 실험하고 고치는 일을 스스로 하려고 하면 그만큼의 인력을 보유하고 관리하여야 하는데, 그런 일이 하나 둘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직접 만드는 것이 대체로 효율이 낮다. 용역은 이런 일을 다른 전문 회사 C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에 대한 권리(특허 등등)는 대체로 그 일을 실제 수행한 회사 C에게 있지 않고, 그 일을 맡긴 B가 갖는다(최근에는 공동 소유를 인정하는 추세이다).

C도 그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지만, D, E, F라는 회사에게 나눠 맡겨서 할 수도 있다. 이것을 재하청이라고 한다. B가 C에게 일을 준 것은 하청, C가 D, E, F에게 일을 준 것은 재하청. B가 직접 D, E, F에게 주면 되지 않느냐고? 맞다. 요즘은 그렇게 하기도 한다. 즉, 재하청을 금지하고, C(주계약업체)와 계약은 하되, D, E, F를 하나의 그룹으로 보고 계약서에 역할과 사업비를 명시한다. 그런 그룹을 컨소시엄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재하청을 금지하지 않았는데, 그랬더니 C는 돈만 떼어먹고 실제 일을 하는 D, E, F에게 돈을 너무 적게 주어서 결과물이 엉망이 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 많은 분야에서 법으로 재하청을 금지시켰다. 계약할 때 아예 일을 맡길 업체들을 다 명시해라, 그리고 얼마 줄 건지 누가 무슨 일을 할 건지 명시해라. 그럼 D, E, F에 대해 일의 관리와 돈의 집행은 C가 하지만 그 일의 수행과 돈의 흐름은 B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대체로 B는 정부기관, C는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 D, E, F는 중소기업이다.

재하청만 금지하고, 컨소시엄을 관리하지 않았을 때는 관행적으로 묵시적으로 재하청을 했었다. 그럼 D, E, F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재하청을 받아서 일을 했다. (사실 아직도 그런식으로 불법 재하청을 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런 경우 C는 중견기업 또는 중기업인 경우가 많다. 대기업은 정부나 관련 기관의 감시가 심하기도 하고, 자체적인 윤리경영 지침 때문에 요즘은 이런 불법 재하청을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회사 F로 첫 수입을 벌기 시작했다. 하도급(재하청)을 받는 회사.

원래는 훌륭한 자사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지만, 그런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금도 필요했고, 기술력 있는 인력도 필요했다. 생각해보시라. 시장에 먹힐 제품이란 것이 허접한 수준으로 만들어질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런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 한두 명 일리도 없거니와 그 실력도 겨우 중급자 수준일리도 없다.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력이 최소한 한 부서만큼 있어야 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시간도 최소 일 년 이상일 것이고 대체로 3년은 걸릴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고급 인력 5명이 3년 개발한다면 그 인건비만 최소 15~30억은 될 것이다(1년에 5~10억). 거기에 필요한 여러 비용들을 추가한다면(판관비 또는 재경비라고 한다), 제품이 완성되는데 필요한 금액(인건비의 50%로 책정)은 22~45억일 것이다(1년에 7~15억). 재료비는 별개이다. (참고로 판관비를 인건비의 50%로 잡은 것은 정말 박하게 잡은 것이다.)

나는 그런 돈도 없었고, 그만큼을 투자할만한 투자자를 혹하게 할 정도의 제품 아이디어도, 말주변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 제품을 만들겠다는 꿈은 잠시 뒤로 미루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돈을 벌자라고 계획을 수정했다. 그래서 일단 C같은 회사(주계약업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 회사가 된다면 우리의 제품을 만들 만큼의 자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C같은 회사가 된다라... 직접 하청을 받는 회사가 된다라...

한낱 무수리가 어느 날 갑자기 왕의 승은을 입는다? Cindafuckin’rella도 아니고...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보자.

당신이 실력이 있는 회사를 차렸다. 일을 잘한다. 고객이 그걸 안다.

그럼 고객이 당신에게 일을 줄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일을 잘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면 일을 바로 줄 수 있다고 하자. 그럼 일을 잘한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사장이나 담당자의 말 한마디("내가 그 회사 아는데..")가 그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담당자가 그걸 근거로 내세우는 순간 그는 모가지가 잘릴 것이다. 비리/부패 혐의로. 그러지 않으려면, 일을 잘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으로 비리가 아니다.

일을 잘 했다는 증거...

그건 일을 해야 생기는 거다. 그런 일을 하려면 일을 잘 했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다람쥐 챗바퀴도는 듯한 모순이고 딜레마이다.

 

고객이 우릴 도와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그때부터 나는 창녀가 되었다. 한없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지금 죽지 않고 올라가려면 살기 위해 바닥으로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