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투자에 관련한 깨달음을 얻은 한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시작하련다.
투자라는 이름의 사기도박을 하는 사람도 있다.
대학 동창을 우리 회사로 영입하려고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이다.
"투자자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실제 대단한가 보다 그 능력이 대단하다고 설득할 수(혹은 속일 수) 있는 CEO의 능력을 중요하게 본다. 지금 나를 설득할 수 있다면, 내가 산 주식을 더 비싸게 사줄 다음 투자자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투자자가 꼭 속아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구나. 속는 줄 알면서도 투자하는구나.
즉, 그런 투자자들은, 내가 상투를 잡은 투자자만 아니라면, 회사가 가진 능력의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성장 vs. 성장을 위한 투자 유치
내가 만든 회사를 어떻게 성장시켜갈 것인가는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성장이 있고, 성장을 위한 투자 유치가 있다.
회사의 성공을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어 많은 투자를 유치해서 내 투자분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좋은 제품/서비스를 만들어 시장에서 인정받고 이익을 내는 것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얼핏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의 논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현실은 닭을 생산하고자 달걀을 낳는 것이냐, 달걀을 생산하고자 닭을 키우는 것이냐의 차이가 생긴다.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성장을 하는 회사(이하 투자 유치 중심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내 이익을 실현할 기회가 빠르게 오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는 지속적인 투자 유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음번 투자 유치 때 내 지분을 처분할 기회가 생긴다. 극단적으로, 이런 투자자는 내 투자금을 회수할 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회사의 주요 자산도 마구 처분하는 CEO가 옳다고 할 수 있다. 회사가 사업을 통해 이익을 내지 못해도, 내 투자금을 회수할 때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 그 회사는 성공한 회사가 되는 것이다.
성장을 위해 투자를 유치하는 회사(이하 성장 중심 회사)는 회사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투자받는 회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성장의 동력이 확보되어 있지 않다면 투자를 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이런 회사는 투기꾼들에 의해 주가가 갑자기 치솟는다고 해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이 회사가 투자를 유치한 목적을 달성하여 그 결과 기대한 이익 또는 그 이상의 이익을 낸다면 성공한 회사이다.
회사가 어떤 성공을 바라는가에 따라 시작부터 전략이 달라진다.
내가 회사를 처음 설립할 때, 많은 지인들이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고, 좋은 분들을 소개받았다.
그중 한 분은 내 사업 계획서를 보시더니, 이렇게 회사를 경영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꾸짖었다(물론 좋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듣는 나는 호된 꾸지람이었다).
이 회사에 투자할 가치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였다. 나는 투자할 가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저 이런 분야에서 이런 사업을 이런 방식으로 해서 언제쯤부터 이익을 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슨 상품이나 제품, 시장을 확보하고서 사업에 뛰어든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 시대의 유행에 맞는 신기술을 적용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사업 제안서도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 생존하겠다와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겠다는 것만 있을 뿐이었다.
반면 그 분이 컨설팅해주고 있는 회사의 제안서는 참 멋졌다.
당시 유행하던 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어떤 제품을 만들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예쁘게 포장해서 설명하는 제안서였다. 심지어 앞으로 언제 얼마나 더 투자를 받고 언제 상장할지 계획도 나와 있었다.
나는 살아돌아가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였다.
그분께 더 공부하고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허나 그 이후로도 나는 그분이 보여준 그런 제안서를 아직까지 한 번도 쓰지 못했다.
모든 투자자는 투자에 대한 대가 즉 이익을 원한다.
허나 어떤 목적으로 투자를 하는가 또는 유치하는가에 따라 회사의 경영 전략이 달라진다.
우리 회사는 투자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먹고 살 돈을 벌어오는 게 중요했지, 투자를 받아서 제품/서비스를 확보하거나 마케팅을 해야 할 만큼 큰 이슈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대컨데는 향후 2~3년 내에 그런 기회가 한번 올지도 모르겠다.
아까 그 회사는 투자를 받아야 했다. 투자를 받은 돈으로 그 제품을 만들 계획이기 때문이다. 투자를 받지 못하면 제품이 완성되지 않는다. 경험 상 이런 회사는 투자를 꾸준히 유치해야 하고 그 금액과 규모는 점점 늘어난다.
우리는 이익을 내는 회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뚜렷한 성장 동력이 없이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사기가 되거나 빚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 경쟁력 있는 제품/서비스 혹은 상품이 필요하며 시장이 필요하다. 그런 제품/서비스 또는 상품, 시장을 만들어 내는 우리의 조직 능력은 구비되었지만 우리의 자본력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울 때, 그때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말 그대로 레버리지 효과가 필요할 때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다.
아까 언급한 또 다른 회사는 투자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제품/서비스 또는 시장이 만들어지느냐 아니냐 보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가능성 또는 신화만 있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실제 시장에 제품/서비스를 내놓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어낼 때까지 지속적으로 다음 투자자가 존재하도록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떤 회사가 올바른가라고 말할 수 없다.
사실 이런 투자 유치 모델로 회사가 제품/서비스를 완성하고 시장을 창출하여 성공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외 유명 벤처 기업들이 이런 회사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러했고, 페이스북이 그러했고, 테슬라가 그러했다.
벤처 성공 신화의 기업이다.
이런 성공은 이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성장을 동력으로 실제 제품/서비스와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왜 우리는 그런 회사가 없느냐.
너무 뻔한 답이지만, 우리는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만 달성된다면 제품/서비스, 시장의 창출은 관계없다는 관점이 팽배한 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듣기 좋은 말은 아무래도 성장 중심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다.
허나 현실은 투자 유치 중심 기업을 성공하는 기업으로 바라보는 성향이 있다.
그래야 창업자도 돈 벌고 투자자도 돈을 번다. 허나 기업이 실제 제품/서비스를 시장에 내놓고 이익을 내는 것이 투자 유치의 궁극적 목적이 되지 못한다면 마지막 투자자만 사기를 당할 뿐이다. 심지어 그런 사기도 제대로 쳐보지 못하고 무너지는 창업자들은 수두룩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그런 창업이야 말로 진정한 창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투자를 유치할 것인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 자문할 때이다.
그렇다면 사기 치는 회사가 되지 않으려면, 또는 그러 회사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 가치(기술력, 영업력, 업력 같은 것), 현재 가치(영업 이익), 미래 가치(성장 가능성, 자산과 영업 이익의 성장 가능성)를 꼼꼼히 따져야 할 것이다.
우리 회사는 과거 가치와 현재 가치를 튼실하게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성장해왔다.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는 거의 하지 못했다. 앞서 계속 언급했듯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다만 그 와중에 과거 가치를 좋게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그 덕분에 최근에 현재 가치가 높아지는 기회가 찾아왔다. 향후 몇 년간은 우리의 기술력과 영업력 등 회사에 내재되는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자체적인 투자가 가능하게 되었다. 즉 미래 가치를 높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것이 향후 우리의 현재가치와 과거 가치를 높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우리는 더 큰 성장을 위한 투자 유치를 신중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런 투자 유치는 사기나 빚이 아니라 투자자와 회사가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협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석대로 회사를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