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창업을 해보겠다고 한다면 나는 무엇을 살피고 무슨 조언을 할 것인가?
요즘은 워낙 창업에 대한 가이드를 잘해주고 있어서 뭐라 딱히 해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웬만한 절차들은 다 공식처럼 만들어져 있고, 그걸 잘 따라 하면 되게끔 시스템화되어 있다는 것은 예비창업자들에게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 절차와 공식이 잘 정리되어 있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그럼 굳이 뻔한 잔소리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지?
일단, 차분히 그의 창업 계획에 대해서 들어보겠다.
아마도 무슨 아이템으로 사업을 할 것이다라는 것 정도는 다들 준비했을 것이다(나도 그 준비란 걸 했지만, 사실 아이템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수차례 고백했다).
공식을 조금 더 살펴보고 착실히 준비했다면, 창업 비용은 얼마가 필요하고, 손익분기점은 언제 어떻게 넘을 것이고, 마케팅/영업은 어떻게 할지, 또 투자유치는 어떤 절차로 어느 시점에 받을 것이라는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창업동기들은 누구누구이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와 지분은 어떻게 나눌 것이다라는 것도 준비가 되었다면 사실상 창업의 조언을 듣기보다는 창업한다는 것은 확정되었고 혹시 제가 고려할 것이 있을까요?라는 물음을 가지고 방문한 것일 것이다.
모... 사실 잘 준비된 모습이고, 요즘 이 정도는 다들 하는 준비하고 시작하는 모양이다.
나는 아마도 "참 많이 준비했네요. 부럽습니다. 잘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한 뒤 악수를 청할 것이고, 좀 신경이 쓰이는 사람 같으면 몇 가지를 물어볼 것이다.
아마도 우선 이렇게 물어볼 것 같다.
전표와 재무재표를 스스로 작성할 수 있는가?
창업 후, 5년정도의 운영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질문을 좀 더 친절하게 한다면, 이익을 내서 감당할 것인가, 투자 유치를 해서 감당할 것인가?일 것이다)
창업을 준비하고 내게 조언을 청하는 사람에게서 재무재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을 들어본 적은 여태 딱 한 번이다.
대부분 세무사에 맡길 거라고 한다.
일 년 정도는 직접 해보셔야 합니다라고 하면 그거 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럴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고객과 투자자(대부분의 startup에게는 그들이 주 고객이다)를 만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물어본다. 재무제표를 읽을 줄은 아느냐고. 대체로 돌아오는 답은 주식투자를 좀 해봐서 읽을 줄 안다고 한다. 그럼 이런 종류의 것을 물어보기도 한다. 대표이사의 급여는 매출원가일가요, 판관비일까요? 그러면 우물쭈물하다가 둘 중 하나를 찍는다. 어떤 사람은 짜증 섞인 투로(자신을 시험하는 기분이 드니까)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도 한다. (사실 그것 자체가 중요할 때도 있다. 내겐 그랬다. 몇 천내지 몇 억을 날릴 뻔한 걸 막았거든. 단지 그걸 안다는 것만으로...)
하지만, 대부분 그냥 세무사에게 맡긴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알려준 대로 작성법을 배우고 실제 작성한 사람은 여태 딱 한 명 봤다(이미 작성할 줄 안다고 한 사람은 당연히 스스로 작성했고). 그리고 2년 차에 세무사에 맡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표는 직접 작성 중이다. 부작용으로, 창업 3년 차인 그는 돈의 흐름을 너무 잘 알아서 매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운영비에 대한 질문은, 이 사람이 어떤 류의 회사를 만들 계획인지와 운영에 대한 어느 정도 현실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위한 질문이다.
대부분의 창업 절차에 대한 알려진 공식은 투자유치를 전제하는 공식이다.
왜 그런 공식(만)이 잘 알려진 것일까?
그 공식을 기업가가 아닌 바로 투자자들이 정리했기 때문이다.
5년 차 회사 중, 이제 100억의 매출과 10억의 이익을 내는 자본금 1억짜리 회사와 매년 10억의 매출과 10억의 손실을 내는 자본금 10억짜리 회사가 있다고 하자. 단, 전자는 자본 투자를 받은 적 없는 회사이고 후자는 자본 투자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회사이다.
당신이 투자자라면 어느 회사가 투자하고 싶은 회사일까? 물론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지만, 다른 조건은 대충 비슷하다고 치자.
내가 아는 대부분의 투자자는 후자를 선호한다.
우선 자본 투자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투자를 했다는 것은 누군가 긍정적으로 보았다는 의미도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투자 유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내가 투자를 해도 Exit 할 기회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물론 투자자들은 이 회사가 오늘내일 사이에 망할 회사인지, 투자 유치로 몇 년은 더 유지될 수 있는 회사인지를 정도는 아주 쉽게 잘 파악한다). 반면 전자는 투자를 유치한 적도 없고 아마 계획도 없을 것이다. 투자를 유치한다고 해도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다음 투자를 또 유치한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 투자자는 투자자본이 갇힌다. 투자자본이 돌고 돌아서 눈덩이처럼 불어나야 하는데 어느 회사에 돈이 갇혀서 은행이자와 엇비슷한 이익배분을 받고 있다면(배당은 많은 세금이 걸러진 뒤에 받을 수 있고, 배당에 대해서도 세금이 붙기 때문에 회사의 세전 이익 수준보다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기회비용면에서 엄청난 손해가 될 것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자본금이 작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투자를 유치해서 회사를 성장시키고 성공시키고 상장하는 공식을 CEO와 CFO에게 유일한 성공 공식처럼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이 먹을거리가 있으니까.
기업가에게 어느 회사가 운영하기 좋은 회사일까?
참 어려운 이야기이다.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의 판단이 아니라 성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박이나 주식에서 한방 큰 거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 후자가 잘 맞다고 본다. 성공 확률은 낮지만 자신의 능력치가 그 확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면, 더불어 정말 운이 많이 좋은 CEO라면 자신의 꿈(돈 버는 것 외에도 CEO는 하나 이상씩은 다른 꿈이 있다)도 이루고 돈도 벌 것이다.
잔잔히 꾸준하게 소처럼 앞으로 나가는 타입이라면, 전자가 잘 맞다. 한방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물론 한 번의 투자 유치로 크게 한방을 하는 회사를 직간접으로 한번씩 보았다. 너무 부러웠다). 이런 회사의 CEO에게 뭐가 제일 좋을까? 아마 간섭받지 않는 경영권일 것이다. 온전히 일만 열심히 하면 되고, 나와 생각이 다른 투자자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온전하게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만일 성장에 가속도가 붙는다면, 물론 이 또한 정말 운이 많이 좋아야 가능하지만, 투자유치에 노력하지 않아도 CEO의 경영권을 충분히 방어하면서 투자자들이 투자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현재의 스페이스X가 대표적인 회사이다.
(사실 이쯤 되면, 도대체 주식회사란 무엇이고, 왜 주식회사에 투자를 하는 것인가, 주가는 도대체 뭘 근거로 저렇게 매겨지는가라는 아주 원천적인 의문을 가지는 게 정상이다. 나도 최근에서야 이에 대한 대충의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이러한 이유로 CEO의 공포와 그에 대한 대처법도 서로 조금씩 다르다. 전자의 회사는 어떻게 회사가 돈을 벌 것인가를 주로 고민하게 되고, 후자의 회사는 어떻게 회사가 돈을 벌 것이라고 투자자들을 설득할 것인가를 주로 고민하게 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벤처 등록은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위의 질문들을 다 마쳤을 때 어쩌다가 생각나면 할 질문이다.
이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인데, 벤처 등록이 가능한 업종에 있는 회사들은 웬만하면 벤처등록을 하려고 한다. 여러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방법을 가장 선호하냐 하면,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대출받는 방식이다. 벤처 인증이라는 검색을 해보면 여러 방식이 존재하는데, 각 방식의 조건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대출에 의한 방법을 선호할 만하다. 그게 제일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나머지 다른 조건은 뭔가 좀 더 복잡하거나 실적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걸로 컨설팅하는 업체(라고 쓰고 대출 브로커라고 읽는다)도 엄청 많다.
매우 주관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히고, 그런 방법으로 벤처 등록하지 말라고 권한다.
첫 번째 이유는 시작부터 빚을 지고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회사가 어려워지는 경우, 기술보증기금은 엄청 지독하게 회수한다는 것이다(하이에나의 턱을 상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조언 역시 대부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다른 방법은 너무 어렵고 시간이나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벤처 등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면 그런 방법이라도 써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명심하고 잘 대비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몇 년 전에 정부에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제도 개선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얼마나 잘 되었는지는 꼼꼼히 살펴봐야 알 일이다.)
요즘은 startup 육성 정책이 잘 만들어져서 정부 지원을 통해 많은 컨설턴트를 만날 수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망했든 흥했든 직접 starup을 만들어보고 7년 이상 운영해 본 컨설턴트들에게 조언을 청하길 권한다(단, 자기 자랑 많이 하는 사람은 멀리하라. 그도 당신에게서 많은 것을 얻어가려 할 것이다). 교수나 대기업 임원은 조금 덜 자주 만나라(단, 뭔가 정리안된 듯한 이야기나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을 때나 인맥이 좀 필요할 때, 그들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가까운 지인 중 startup을 거쳐 본 사람이 있다면, 조언을 청하라. 밥사고 커피 마시는 걸로 컨설팅비가 충분하다고 말한다면 그를 정중히 자주 만나라. 그는 어쨌든 진심으로 조언할 것이다.
물론 그의 조언이 올바르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