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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일지

창업 준비에 대해서 - 생각나는 대로 2

by 노랑재규어 2024. 9. 9.

부제 : 철창 속의 고릴라가 되지 않기 - 창업할 때 조심할 것, 지나친 낙관

 

회사 인근 식당 하나가 최근 문을 닫았다.

프렌차이즈 쌀국수 집인데, 주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점심식사 서비스가 주 수입원이다.

그 가게가 인테리어를 마치고 막 영업을 시작했을 때, 처음 드는 생각은 "테이블 수에 비해서 직원이 너무 많다"였다.

면적이 작아서 테이블 수도 매우 적은데, 직원 수 대비 테이블 비율이 1인당 2인석 정도로 보였다. 계산기는 두드려보고 창업을 했을까 우려가 되었지만 매일 점심시간에 빈자리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는데 문을 연지 일년여 만에 영업이 중단되었다.

 

망하려고 창업하는 사업은 없다. 

개인 사업이든 법인 사업이든 사업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사업계획서라는 것을 써보기 마련이다. 얼마나 꼼꼼하게 잘 쓰는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하다 못해 머릿 속에 대충의 예상 손익이라도 계산해본다. 즉, 창업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돈을 번다는 예언서를 손에 쥐고 사업을 시작한다. 그렇지 않고서 사업을 하는 사람은 결코 없다.

그리고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 예언서를 보여준다.

그 예언서를 살펴 본(또는 귀담아 들어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걱정과 격려를 함께 보내준다. 예비창업자는 그것들 중에서 걱정은 버리고 격려를 취한다. 낙관적이고 낙관적이며 세상 누구보다 낙관적이다. 그가 쥐고 있는 예언서에 따르면, 그의 통장에 돈 꽂힐 일만 남았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예비 창업자가 작성한 손익계산서대로 되는 일은 없다. 왜? 단지 운이 없기 때문이다.

 

철장 속의 고릴라.

사무실이 요즘 핫하다는 성수동~서울숲 사이에 있다보니 가끔 걸어서 출퇴근하다보면 나고드는 많은 상점들을 보게 된다. 수 년간 흥망성쇄의 상점들을 보다보면, 돈버는 건 건물주 뿐이구나 싶다. 다들 뼈빠지게 고생하면서 빚까지 내가며 매출을 올려보지만, 정작 돈을 버는 것은 꼬박꼬박 월세를 받아가는 건물주 뿐이고, 결국 자신의 피땀눈물의 대가를 꼬박꼬박 그들에게 바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고생고생하며 버텨내고 돈 좀 벌만하면, 월세를 올리기 일쑤다.그래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하는 게다.

이런 핫플레이스의 상점은 불황에도 공실인 경우가 별로 없다.

누군가가 장사를 하다가 망하면, 그 자리에 곧바로 새로운 창업자가 들어온다. 낙관적인 미래가 적힌 예언서를 들고... 앞서 장사를 하다가 나간 사람은 그럼 뭔가? 다른 가게로 넓혀서 갈꺼라고 한다. 결코 망했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래야 권리금을 받으니까... 

물론 새로운 창업자도 대충 눈치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성공의 보증서인 예언서가 있지 않은가, 앞선 창업자와는 다르게 찐 예언서가...

건물주와 나처럼 그 동네에 오래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저들도 건물주에게 돈을 바치다가 더는 바칠 돈이 없으면 사라질 것이라는 걸...

나는 철장 속의 고릴라를 떠올린다. 바나나(지금은 적자이지만 곧 성공할 꺼라는 희망, 핫 플레이스에서 사업한다는 자부심 등)을 받아먹으면서 혈관에 바늘을 꽂고 피를 내준다. 건물주, 국가(세금), 은행(이자), 인건비, 프랜차이즈 등등에게. 그러다가 더이상 나올 피가 없으면 그 고릴라는 철장에서 쫓겨나고  뒤에 줄서 있는 아무 것도 모르는, 희망에 찬 다음 고릴라가 들어온다.

왜 다음 고릴라는 그걸 모를까? 철장 속의 고릴라가 꽤 오랜동안 그 철장에 머물렀으니 뭔가 있겠지라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과 앞선 철장 속의 고릴라는 절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건물주는 일종의 비유이다. 사실 대부분의 건물주도 괴롭다. 밀리는 월세, 막무가내 세입자, 높은 이자, 각종 사건 사고 처리 등등. 숨어있는 진정한 조물주는 아마도 건물주 위에 있는 은행일 것이다.)

 

사업할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주관적인 낙관"이다.

사업을 망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낙관적 예측이 나왔기 때문에 사업을 한다.

솔직히 모든 것을 다 확신하고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 포함된 예측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근거없는 낙관이 허락되지는 않는다. 사업을 하겠다는, 해야 한다는 조바심은 객관적 판단의 기회를 파괴한다. 그렇지만 불확실성이 없는 미래는 없으므로, 완벽한 예측과 준비를 갖추고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다. 신중한 준비는 망할 위험와 반비례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또한 신중한 준비와 사업 시행 가능성도 반비례한다. 도대체 어쩌라는 것이냐고?

 

결심은 신중함과 과감함 사이의 변곡점이다.

내 생각에 사업을 하겠다는 결심은 신중함이 과감함으로 변하는 변곡점이어야 한다. 사업을 진짜 하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는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용기란 이런 것이 용기이다). 격려는 나 망하라는 아첨이라고 생각하고 흘려 듣고 걱정은 비싼 컨설팅이라 생각하고 귀담아서 따져보는 것이 좋다. 그 걱정들도 여러가지로 살펴보면 그냥 걱정과 진짜 걱정으로 구분되고, 진짜 걱정에서는 해결하고 갈 걱정과 늘 안고가야 할 걱정이 구분된다. 이 해결하고 가야 할 걱정들을 꼼꼼하게 대비하는 것은 수억원의 손실 또는 패가망신을 막아줄 보험될 것이다. 그리고 결심하고 실행하게 되었을 때는 자신의 신중함을 증명하기 위해 강한 추진력과 실행력으로 밀고 가야 한다. 겁먹고 머뭇머뭇거리고 허둥지둥하면 그저 하이에나의 먹이가 될 뿐이다.

 

사업은 돈이 흐르는 곳이다. 더 정확히는 흘러야만 하는 곳이다.

흔히 들어오는 돈이 많고 나가는 돈이 적으면 이익이고 그 반대면 적자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업을 하면 할 수록 사업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그런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에는 흘러온 만큼 나가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물이 흘러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럼 이익은 뭐냐고? 흐르는 물의 폭과 깊이, 그리고 꾸준함에서 나온다. 사업은 그 폭과 깊이를 크게 하면서 물이 흐를 수 있는 높이차를 유지하는 것이지 돈을 가두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보다 어떻게 하면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라. 

당신의 수익은 그 마르지 않고 흐르는 물에서 언제라도 떠마실 수 있는 한 컵의 물일 것이다.

물론 이건 나의 매우 개인적인 주장이자 주관적인 개념이다.

또한 사업 초기의 타오르는 갈증은 생존의 문제일 뿐 사업의 철학 운운할 문제가 아님도 공감한다.